[수필] 계룡산 기도를 가다
-SPN 서울포스트, 정기보 칼럼니스트

가을은 등산의 계절이다.
우리나라 전국의 심산유곡에는 울긋불긋 단풍으로 수놓인 계절의 그림에 많은 사람들이 그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다.
해 마다 가을맞이 시즌이 되면 서울시가지의 기차역전이나 전철역 주변에는 색색 옷을 입은 등산객들이 만원이다.

사회봉사 활동가들은 명승유원지의 환경보호와 등산객들의 편의를 위하여 친절하고 유쾌한 봉사자들이 입산자들과 어울러서 활발한 사회질서 유지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환경을 보는 눈은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환경을 즐기려는 자.
환경정리로 봉사하려는 자다.

필자는 청년시절 우리나라가 농경시대에서 산업경제시대로 전환했던 1960년 후반기 불모지(不毛地)의 땅으로 알려진 울산근해의 척박한 땅에 공업단지 조성의 일환으로 산업전사자로 근무 할 때였다.

청명한 울산의 강산 하늘이 공업단지에서 배출되는 대기공해와 폐수방류의 심각한 오염을 눈여겨보면서 필자 스스로 환경보전 업무를 지원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정년이 되기까지 사회에 환경운동이나 환경 정화 운동이라면 솔선하는 습관이 되기를 벌써 40년이나 흘렸다.

사회자선 사업이나 환경운동이 몸에 베인 사람은 노년기가 되어도 일이 없으면 만들어 하는 버릇이 있어서 하루일과가 생계유지를 떠나서 바쁘기 마련인데 사회여권이 복잡하게 얽히다보면 힘에 부치기 마련이다.

필자의 기발한 자구책(自救策)은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는 어려움이 빠질 때 만사를 재쳐놓고 산을 찾게 된다.
인적이 드문 깊은 산중에서 참선(參禪)도 하고 산신기도(山神祈禱)를 하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일생일대에 가장 뜻 깊은 추억이 된다.

필자가 참여하는 문학 동인회중의 월례회 마다 시낭송회(詩朗誦會)를 하는 한 모임은 우리나라 문인들의 원로작가(元老作家)들이다.

원로회원 중에 한분의 소계로 계룡산 임금 봉 아래의 천인사라는 굿 당을 가게 되었다.
오전 8시에 동서울에서 유성시외버스 터미널로 가는 장거리 시외버스를 탔다.
2시간 20분 쯤에 도착되었는데 큰 배낭과 여행용가방에 텐트와 침낭 취사류 및 식량 21일분을 싫었는데 짐이 제법 무거웠다.
유성 터미널에서 시내버스로 한 십리를 지나가면 천인사 임금봉 입구에 다다르는데 여기에서 짐을 내리고 사방을 둘러보니 계룡산 전체가 병풍처럼 한눈에 펼쳐졌다.

산봉위에는 바위가 성을 이루고 바위 밑으로 진하게 물 드린 단풍잎이 파란 하늘과 바위와 .단풍이 절경(絶景)을 이루고 있다.
큰 심호흡 한 번에 도회지의 매캐한 연무속의 공기를 단번에 씻어 내는 것 같다.

정류소의 게시판에 콜택시 전화번호가 눈에 들어온다.

“여보세요.” “여기 천인사로 가는 버스 정류소인데요. 콜 부탁합니다.”
“네. 한 20분쯤에 도착 될 겁니다.”

택시로 한 10분 거리의 천인사 굿 당에 이른다.
산 아래 곳곳마다 무당들의 굿 소리가 울리고 드문드문 매달린 감의 풍취가 다른 세상에 온 감상이다.
필자는 미리 전화로 소개를 받은 터라 굿 당의 노파와 인사를 나누고 가까운 곳에 텐트를 치기로 배려 받았다.

초행길이라 점심 제공을 받고 참선 수행할 장소를 물색했는데 굿당 본가에서 한 300m 거리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바닥을 적당히 고르고 텐트를 치니 시간 반이 소요 되었다.
캠프장 바로 위쪽 편에는 마치 거북이가 선정(禪定) 에 들은 형상을 한 바위가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필자는 그 바위를 선정구암(禪定龜岩) 보살님이라 명명(命名)고 합장배례(合掌拜禮)하였다.

삼칠일(21일간) 예정으로 식사는 라면으로 하루 두 끼 오전 8시와 오후 4시로 정했다.
그리고 참선수행 장소에는 물이 전혀 없으므로 식후 두 번 중에 오전은 세면과 머리 깜기로 정하고 오후 식후는 굿당 본가로 내려와서 식수 나르기로 했다.

늦가을에 쌓인 가랑잎이 산길마다 쌓여서 어느 쪽이 소로 길인지 알 수가 없다.

산불예방의 방화설비가 없어서 굿 당을 벗어나면 촛불을 자재해야 한다.

겨우 텐트 안에서 가스버너로 간단한 식사시간 외는 불 사용이 안 되니 해가 지면 캄캄한 텐트 속에서 참선수행을 해야 하는데 가끔 바깥에서 쏟아 질 뜻한 별을 본다든가 낙엽저서 앙상한 나뭇가지에 걸린 달님을 불빛으로 보게 된다.

첫 날 저녁은 큰 비를 맞게 되는데 텐트 안으로 빗방울이 새어 들어서 뜬눈으로 밤을 새웠고 그 다음 날 저녁은 어찌나 춥던지 밤이 새도록 턱이 절로 덜덜 떨렸다.
참선수행이 아니라 어쩌면 추위를 면할 수 있을꼬 그 생각만으로 시간을 때우고 나니 소변 색깔이 노랗게 변했다.

그 다음날은 천인사 굿 당에 가서 낫을 빌리고 산 아래 공터에 키 만큼 누 렇게 자란 강아지 풀을 베다가 텐트 가를 두르고 또 두터운 포를 구하여 텐트 위를 덮으니 제법 훈기가 도는 실내 공간이 되었다.
천인사 굿 당에서 매우 뜨거운 온수를 유담포에 담으니 남방이 만점이다.

한 50m 아래에서는 무당들의 굿 소리가 밤공기의 정적을 깨고 필자가 수행하는 뒤편 산 중턱에서는 부엉이. 노루.. 여우의 울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참선수행하면서 수면(睡眠)은 서너 시간밖에 취하지 않고 정진했는데 10일이 넘어서니 몸이 많이 지쳐왔다.

어느 날 밤에는 산 아래 단군제단 굿 당에서 굿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오는데 필자가 수행하는 텐트 바로 옆으로 뭍 산짐승들이 내려와 주시 하면서 야수의 눈 빛이 해드라이트 같이 비쳐왔다.

소변을 봐야겠는데 늘 사용했던 물통이 그날따라 텐트 바깥에 쫌 멀리 떨어진 곳에 두어서 짐승들이 놀랠까봐 밖으로 나올 수가 없이 참다가 안 되어서 나오니 짐승들이 나를 보는 둥 마는 둥 굿 소리에 취해 있는게 아닌가
필자가 소변을 보고 굿 소리가 머문 뜻하니 산 짐승이 어느새 사라졌다.

평소에 텐트부근까지 내려온 짐승들이 필자가 후래시를 들고 나타나면 눈 깜짝 할 사이에 달아나는데 굿 소리와 산짐승의 교감이 있은 그 날의 분위기는 알 수 없는 정신적 수행의 예감이 들었다.

휴대폰을 끊은 채 참선수행을 하면서 신체적으로 무리한 정진 이었는데도 정신만큼은 계룡산의 맑은 공기와 풍치에 복잡하기만 하였던 사회생활의 어두운 마음들은 얼음 녹듯이 사라졌다.

몸은 몹시 쇠약 해보여도 정신만은 태산을 잡은 듯이 더 강한 파워를 나도 모르게 담은 느낌이었다.

필자의 굳은 마음 한 가운데는 평소에 무당과 굿 소리를 무조건 거부하는 인식이 있었으나 계룡산 천인사 굿 당의 모습을 눈여겨보면서 고대 우리조상님께서 조국과 민족을 지켜 오신 정신이 기적을 울리는 굿 소리 속에 담겨있는 내력을 느끼게 되니 무당과 굿 소리는 단군(單軍)이래로 단일 민족의 뿌리로 재평가되기도 한다.

선정기도를 회향(回向)하는 날은 천인사에서 점심 공양을 받았는데 참선정진에 허약한 체력이 시원한 콩나물 국밥을 먹으니 온 만신의 피로가 단번에 풀리는 것 같다.

삼칠 선정기도를 회향하고 그립던 가정에 드니 우리나라 금수강산 곳곳의 기도처 마다 하느님이 보호하고 호국불심이 가호하는 대한민국의 한 자손이기에 매우 감명되기도 한다.

▣ 환경운동가 · 시인, 수필가 (구담 정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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