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명 나라 때 문인 오승은(吳承恩)이라는 사람은 어려서부터 큰 뜻을 품고 열심히 공부하여 과거 시험을 보았지만 번번히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그래도 그는 결코 굴하지 않고 도전을 계속했다. 어느덧 세월은 흐르고 또 흘러 그가 육순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 드디어 과거에 급제했다. 그는 이내 관직에 나아가 꼭 1년을 봉직하고 환갑이 되어 관직을 버리고 물러났다.

이런 경우를 두고 배꼽이 배보다 큰 경우라 할까? 배꼽을 위해 존재하는 배라 할까? 어찌 되었던 그는 단 1년의 벼슬길을 위하여 평생을 바친 꼴이다. 어찌 보면 그의 인생은 헛되이 보내고 만 것처럼 보인다. 몇 번 시도해 보고 안되면 방향을 바꾸어 다른 길로 갔더라면 그는 크게 성공했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앞길을 훤히 내다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만, 이럴 때 젊은이들이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참으로 난감할 것이다. 어쩌면 창창한 앞길이 극과 극으로 갈려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젊은이들이여! 크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첫째, 각자 자기 취향과 적성에 따라 길을 선택해야 함이 마땅하기 때문이며, 둘째, 이미 선택된 길을 가 본 경험이 있는 선배, 선현들의 조언을 거울삼을 수 있으며, 셋째, 확실한 믿음을 바탕으로 장애물을 돌파할 수 있는 과감한 능력을 그대들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승은은 부귀영화나 공명보다 진리탐구 그 자체를 즐긴 것은 아닐까? 과거 급제보다 학문연마에 더 치중했을지도 모른다. 요즈음과는 달리 과거과목이나 일반적 학문이나 별 차이가 없었으니. 그래서 그는 저 유명한 <서유기> 저자로 세상에 그 이름을 기리 남기게 되었을 것이다. 비록 <서유기>가 그의 독창적 창작물이 아니라, 여러 다른 제목의 단편으로 산재해 있거나 구전되어 오던 것들을 체계적으로 모은 것이라 하더라도 그의 명성에 금이 가는 것은 아니다. 그는 결코 인생을 헛되이 보낸 것이 아니었다.

다음, 이곳 미국에서 화재가 되고 있는 서진규(58. 여)씨를 소개하고 저 한다.

서씨는, 현재에는 부산시에 편입된, 경남 동래 인근의 ‘월래’라는 작은 어촌에서 태어 났다. 먹고 살기 힘든 데 입만 하나 더 늘려 놓았다는 이유로 천덕꾸러기로 자랐다. 아버지는 엿장수였고 어머니는 술 장수였다. 훗날 철도 노무자가 된 아버지를 따라 충북 제천에서 중학교를 나왔다. 어머니가 선술집을 내어 가계를 도왔어도 그녀를 고등학교에 진학시킬 형편은 못 되었다. 그녀는 진학의 꿈을 버리지 못해, 그녀를 가로막은 벽을 뚫어 문을 만들기로 작심을 하고 기어코 서울로 갔다. 친척집에 기거하며 잡지도 팔아 보고 가정교사를 하는 등 갖은 고생을 다 하며 고등학교를 혼자 힘으로 졸업했다. 원하는 대학에 합격은 했지만 등록금을 마련할 길이 너무나 막막했다. 할 수 없이 그녀는 대학진학을 다음 기회로 미루고 우선 당장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하여, 아는 언니의 도움으로 가발공장에 들어갔다. 그 후 골프장 캐디, 식당 종업원, 여행사 직원 등등 닥치는 데로 죽을 힘을 다 했지만 어디에도 희망은 없었다. 사방이 꽉꽉 막혀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다시 벽을 뚫어 문을 열 각오로, 식모살이라도 하겠다며, 1971년 23세의 나이에 미국 행을 감행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녀는 식모 대신 식당 웨이트레스가 되었다. 처음에는 뉴욕의 유태인 식당에서, 나중엔 ‘아리랑’이라는 한국식당에서 일했다. 그녀는 식당 종업원 노릇하며 모은 돈으로 퀸스대학에서 어학연수를 한 뒤, 버루크대학에 정식으로 등록하여 꿈에 그리던 대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앞길은 신작로처럼 곧게 뻗어 있지도 않았고, 결코 평탄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미국 동포인 합기도 사범과 결혼했다. 속았다. 그 남자에게는 숨겨놓은 자식이 있었고, 걸핏하면 사정없는 매질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더 이상 대학을 다닐 수 없게 되었다. 또 다시 벽이었다. 그녀는 탈출구로 군 입대를 택했다. 훈련은 고됐지만 이를 악물고 견디어 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포트잭슨에서 보급 주특기 훈련을 마치고 일등병이 되었다. 첫 군대생활은 공교롭게도 한국에서 시작했다. 80년 가을, 32세의 그녀는 미국 조지아주 포트베닝의 간부후보생 학교에 입교, 최 고령 후보생임에도 일등상과 최우수 리더상을 받았고, 드디어 미 육군 장교가 되었다. 82년 중위로 진급한 그녀는 유류담당 참모로 또다시 주한 미군사령부에 근무하게 되었다. 이때 그녀는 중단했던 대학공부를 계속할 결심을 하게 된다. 용산에 있는 메릴렌드대 분교 야간부에서 그녀의 끈질긴 집념을 이어 나갔다. 39세가 되어 드디어 학사학위를 받았다. 피치 못할 기구한 사정으로 장장 14년 동안 5개 대학을 옮겨 다닌 끝에 따낸 눈물겨운 학위였다.

그녀의 열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90년, 그녀는 누구나 꿈꾸는 최고의 대학, 하버드의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독하게 공부했고 2년 만에 석사학위를 받았다. 내친 걸음에, 단 2명에게만 문을 열어준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생계를 위해 군에 복귀했던 그녀는 96년 소령으로 제대했다. 창창한 앞날이 약속된 진급대신에 학업을 택하여 하버드 박사과정에 복학했다. 그리고 10년 공부 끝에, 지난 7월 8일, 드디어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녀의 나이 이제58세다.

▣ 자유기고가 심 천